[한·일수교 50주년-일본 속의 한국기업] 술 대신 '다노시미'를 판 진로…10년 만에 일본 소주시장 1위 우뚝

입력 2015-06-19 22:15  

'난공불락' 일본 시장, 철저한 현지화로 뚫어

1988년 진로재팬 설립 후 '즐거움·젊음' 내세운 마케팅
디자인·맛 일본식으로 바꿔
소주시장 내리막길 걷자 막걸리로 또한번 '대박'
최근엔 맥주시장 도전장



[ 도쿄=서정환 기자 ] 한국에 진로 소주는 있지만 회사 진로(주)는 사라졌다. 2005년 하이트맥주에 인수된 뒤 하이트진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JINRO’ ‘참이슬’을 팔고 있는 회사는 여전히 진로다. 3년 전에는 진로재팬에서 재팬마저 뺐다. 지난 30여년간 ‘다노시미(樂しみ·즐거움)’의 가치를 제공해온 진로에 대해 일본 내 신뢰가 바탕이 되면서 진로(주)란 사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반세기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 기업의 대표 상품으로 진로가 꼽히는 이유기도 하다.

법인 설립 10년 만에 1위로

진로는 1979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 소주 ‘JINRO’를 판매했다. 1988년 진로재팬을 설립한 뒤 본격적인 시장개척에 나섰다. 급성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1997년 독특한 광고 마케팅이었다. 당시 진로의 TV ㅀ磁?보면 소주란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마시는 즐거움만 강조했다. 일본인에게 진로는 ‘즐거움’ ‘젊음과 활력’이란 이미지로 굳어졌다. 술이 아니라 즐거움을 팔았다.

광고 효과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이었던 일본 소주시장에서 1998년 단일브랜드(JINRO) 시장점유율 1위로 이어졌다. 현지법인 설립 10년 만이다. 지난해 소주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도 ‘JINRO’(76.4%)는 전체 소주시장 1위 업체 다카라주조의 ‘준’(58.3%)을 앞섰다.

막걸리 맥주로 위기 돌파

지난 30여년간 진로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소주시장(희석식)은 2004년 이후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진로도 2003년을 정점으로 6년째 매출이 줄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로란 이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막걸리였다.

진로가 일본인 입맛에 맞춰 막걸리를 개발하고 유통망을 정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동막걸리 수출이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그걸 잡으려고 합니까.” 당시 주일(駐日) 한국대사관 고위 인사의 말이었다. 양인집 진로 사장은 “진로는 한국 유통점엔 절대 안 들어갑니다. 반년만 기다리면 이동막걸리업체 사장이 고맙다고 인사하러 올 겁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진로막걸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2010년 70만상자(1상자=8.4L), 2011년에는 140만상자가 팔려나갔다. 일본 내 막걸리 인기 덕분에 50여개 한국 막걸리업체도 덩달아 일본에 진출하는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막걸리 열풍도 싸늘히 식어버렸다. 주변사람 눈치보느라 슈퍼에서조차 소주 사는 사람이 줄었다.

진로는 맥주와 제3맥주(맥아를 쓰지 않는 맥주) 시장을 새롭게 공략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 유니그룹 등에 PB(자체상표) 맥주를 공급했다. 양 사장은 “진로가 30여년간 쌓아온 신뢰를 걸고 좋은 물건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PB맥주는 유통업체가 만든 브랜드를 쓰고 있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국이 제조국인 걸 알 수 있다. 진로는 지난해 일본에서 2억캔 이상의 맥주를 판매했다. 일본 성인 한 사람에 두 캔꼴이다. 지난해 매출 204억엔(약 1850억원) 중 소주, 막걸리에서 줄어든 매출을 맥주가 채웠다.


300여개사 64억달러 대일투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간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은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대일(對日) 투자는 1968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5186건, 63억8800만달러(약 7조270억원)에 달했다. 1980년까지는 283만달러(약 31억원)에 불과했지만 2014년 한 해에만 5억7800만달러 증가했다. 일본 진출 기업이 늘면서 주일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 소속 회원사도 지난해 말 253개로 증가했다. 오사카 등 간사이 지방의 기업 지점, 사무소까지 합할 경우 300여개에 이른다.

금융 쪽에서도 묵묵히 시장을 공략해 자리 잡아가는 기업이 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계 금융사는 SBJ은행 등 20곳으로,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1조2000억엔에 이른다. 이 중 SBJ은행과 현대해상보험은 일본 내 안착에 성공한 대표적 금융사로 꼽힌다. 재일동포 자금으로 설립된 신한은행은 창사 27년 만인 2009년 거꾸로 일본에 현지법인인 SBJ은행을 설립했다. 설립 6년 만인 지난 3월 말 총자산은 5084억엔으로, 지난해 25억엔의 순이익을 거뒀다. 법인 설립 2년 만에 흑자전환한 뒤 5년 연속 흑자행진이다. 현대해상은 한국계 보험사로는 유일하게 일본에서 영업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보험료는 101억엔으로,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100억엔을 돌파했다. 1976년 일본에 진출한 뒤 2000년대 초반까지 좀처럼 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일본 속 한국 기업의 모습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 주요 기업은 일본 전자, 자동차업체에 부품,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 상위 5개 품목 중 스마트폰이 속한 무선통신기기(20억달러)를 제외하면 석유제품(64억달러) 철강판(21억달러) 반도체(18억달러) 금은 및 백금(9억달러) 등 모두 부품·소재가 차지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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